ARTIST’S NOTE | 19
인간이라는 질문
2024 노트에서 발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인간을 거대한 ‘신경 회로망’쯤으로 여기는 데 익숙해졌다. 인간은 더 이상 고유한 존재라기보다, 끊임없이 조정되고 관리되어야 할 하나의 시스템처럼 다뤄진다. 뇌과학의 성과조차 인간을 깊이 이해하는 도구가 되기보다는, 우리를 단백질로 이루어진 반응 장치로 설명하는 근거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루틴과 자기관리에 대한 강박 역시 이런 시선과 자연스럽게 맞물려 있다. 물론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인간을 입출력의 관계로만 작동하는 존재, 결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체계 안의 주체로 이해하는 방식은 인간의 존엄성을 분명하게 축소시킨다. 나는 지금의 이 흐름이 인간을 오독하게 만드는 하나의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시선이 굳어질수록,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점점 단순해지고 있다는 점이 더 문제로 느껴진다. 인간은 설명되기 쉬운 방향으로만 정리되고, 그 과정에서 삶을 지탱해 오던 복잡한 질문들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려난다. 인간을 이해하려는 사유가, 개인의 선택과 판단을 지탱하는 기준이 되어왔다는 사실까지 함께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변화는 언어에서 먼저 드러난다. 한때는 삶을 멈춰 세우고 생각하게 만들던 말들조차, 이제는 감정을 잠시 덮어주는 문장으로 빠르게 소비된다. 말은 넘쳐나지만, 스스로를 오래 붙잡아 두는 질문은 남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어떤 말도 깊이 와닿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이유를 분명히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을 느끼게 되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일지 모른다.
이 지점에서 나는 인간의 본질을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느낀다. 우리는 어떤 존엄성을 가진 인격체인지, 그리고 ‘나’라는 개인과 나를 이루는 의지가 어떻게 온전히 설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스스로를 얼마나 비판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지, 인격적인 선택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 역시 이 물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속도와 결과, 성과 지표로 끊임없이 평가받는 사회 안에서, 혹은 그 기준 바깥에서 우리는 어떻게 삶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상호 존중과 의미 있는 대화는 이미 희미해졌고, 대신 각자는 자신의 방 안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고립을 견디고 있다. 그 결과 냉소는 점점 더 날카로운 형태로 굳어간다.
그렇다면 우리가 스스로에게 끝까지 지키겠다고 말할 수 있는 태도는 무엇일까. 쉽게 타협하지 않고, 스스로를 함부로 다루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자세 말이다. 동시에 나 자신을 함부로 다루지 않으면서, 타인 또한 하나의 인격으로 대하려는 태도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까. 인간으로서 반복되는 실수와 부족함 속에서도 다시 그 질문 앞으로 돌아올 수 있을 때에만, 인간에 대한 이해 역시 다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