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S NOTE | 0
The Authentic Origin: 무한과 죽음의 첫 기억
2013 노트에서 발췌
무한의 시작
내가 처음 ‘무한’을 생각했을 때는 아마 일곱 살 무렵이었다. 작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던 시절, 나는 흙을 파고, 떨어진 나뭇잎을 모으고, 그 사이를 기어 다니는 작은 생명들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했다. 흙을 파면 그 아래의 세계가 갑자기 드러났다. 눈에 보이지 않던 공간이 갈라지고, 그 속에 또 다른 층이 나타났다. 축축하고 차가운 흙의 냄새와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부서져 내리는 감촉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그 속은 내가 알던 마당과는 전혀 다른, 깊고 알 수 없는 비밀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의 감정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끝이 없을지도 모르는 세계’에 대한 첫 자각이었다.
그렇게 드러난 땅속 세계에서, 나를 가장 강렬하게 사로잡은 존재는 지렁이였다. 팔다리 없이도 묵묵히 어디론가 향하는 존재. 매끄럽고 분홍빛의 몸이 흙 위를 비집고 움직일 때마다 나는 알 수 없는 감탄을 느꼈다. 그 작고 단순한 생물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자기 방식으로 세계를 밀고 나아간다는 사실은 내게 더욱 충격이었다. 더군다나 몸을 위아래로 구부렸다 펴기를 반복하는 그 움직임은 이상하리만치 경이로웠다. 나는 결국 잎사귀 위에 지렁이를 올려 집으로 들고 들어와 그 움직임을 따라 해보았다. 배가 쓸렸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던 기억이 난다. 나와 완전히 다른 존재가 움직이는 방식을 몸으로 흉내 내어 재현해냈다는 기쁨에, 나는 부모님 앞에서 자랑하듯 그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후로 나는 여러 번, 오랫동안 마당을 뒤져 지렁이를 찾아 지켜보았다. 그러는 동안 지렁이는 단순히 흙 위를 기어가는 생물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움직임 자체가 어떤 ‘힘’처럼 세상을 통과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시작도 끝도 없어 보이는 그 리듬은 형태가 사라져도 어디선가 다시 이어질 것 같은 생명의 순환처럼 보였다. 세계는 거대하거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손끝의 흙 속에서 이미 무한히 펼쳐져 있었다. 지나고 보니, 그때 나는 이 안에 무엇이 더 숨어 있을지 어렴풋이 궁금해했었던 것 같다. 설명할 수 없었지만, 그 낯선 생명과 마주하는 감각은 나를 계속 붙잡아두었다. 햇빛이 흙의 결을 스치며 색을 달리하는 순간들처럼, 세계의 연결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 흐름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미약하게나마 느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사고가 시작된 최초의 순간이었다. 그때 나는 흐름이라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죽음의 인식
‘죽음’을 처음으로 느낀 순간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그러나 그때의 경험은 죽음의 의미를 이해해 울거나 감정이 요동치는 방식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어린 나는 그저 병원 복도를 채우던 감각들—알코올 냄새, 차가운 바닥, 희미한 불빛,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던 어른들의 무거운 표정—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해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그 장면들은 더 또렷이 남았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의미가 내 안에서 처음으로 자리를 가진 순간은 몇 년 뒤, 중학생이 되었을 때였다. 어느 아침, 내 방 창문 너머로 보이던 작은 공터에서였다. 반쯤 쓰러진 나무 위에 작은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었고, 아침 햇살 속에서 유난히 밝은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공터의 공기는 이상하리만치 맑고 살아 있었지만, 그 생기와 전혀 다른 결을 가진 부서진 나무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속이 깊게 갈라져 어둠을 품은 채 쓰러져 있는 나무. 그리고 그 위에서 여전히 아침을 노래하던 작은 생명.
그 장면은 죽음과 생명이 한 화면 안에서 처음으로 겹쳐 보인 순간이었다. 그날의 시간 전체가 지금까지도 오롯이 기억난다. 나는 그 둘이 서로 단절된 개념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하나의 움직임 안에 놓여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래서인지 죽음이 끝이라기보다 남겨진 것들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나의 생명이 멈추더라도 세계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어린 마음에 조금은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순간의 나는 죽음을 ‘없어짐’이라기보다, 관계가 바뀌는 순간, 형태가 다른 자리로 옮겨가는 변화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장면이 내 안에 남은 이유는, 그것이 정확히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계속 생각이 났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유를 알고 싶다는 마음이 처음 생겼다.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세상이 단순히 끝나거나 시작되는 방식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조용히 인식하게 된 시점이었을 것이다.
무한과 죽음 사이에서
무한은 처음부터 거대한 관념으로 다가온 것이 아니라, 세계가 내가 아는 범위를 넘어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시작되었다. 무엇이 어떻게 더 이어지는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히 내가 보지 못한 방식으로 세계가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만은 있었다. 죽음 또한 사라짐이라기보다, 어떤 조건이 바뀌어 다르게 존재하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어린 나는 이 차이를 설명할 언어가 없었지만, 손끝으로 흙을 파던 감각과 공터에서 울리던 새소리가 그 차이를 가장 먼저 알려주었고, 그것들은 세계의 구조를 인식하는 첫 기억들 중 하나가 되었다.
돌아보면, 이후의 모든 사유는 아마 그때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때의 흙을 파고 있고, 여전히 그 나무 위에서 들리던 새소리를 듣고 있다. 다만 지금의 나는 그 장면을 단순한 기억으로 보지 않고,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모습을 바꾸고 어떤 질서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처음 보여준 장면으로 바라본다.
무한은 멀리 있는 상징이 아니라 바로 발밑에서 일어나고 있었고, 죽음은 그 연속성 위에서 잠시 방향만 달라지는 현상에 가까웠다. 그리고 아마 그때부터, 나 역시 그 구조 안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알고 싶어지는 마음, 존재의 이유를 찾고 싶어지는 생각 역시 그 무렵 조용히 시작되었을 것이다.
지렁이는 이렇게 움직인데요
지렁이의 이동 방향과 목적지는 주로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반응(주성, Taxis)에 의해 결정됩니다.
1. 방향 결정 원리
- 빛 회피 (음성 주광성): 지렁이는 피부에 있는 감광 세포로 빛을 감지하며, 빛을 싫어하여 빛이 오는 쪽의 반대 방향(어두운 쪽)으로 이동합니다.
- 습한 곳 선호 (양성 주습성): 지렁이는 피부 호흡을 하므로 몸이 건조해지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따라서 습도가 높은 곳을 선호하며 그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 먹이/화학물질 감지 (주화성): 지렁이는 토양에 있는 유기물(낙엽, 썩은 식물 등)의 화학적 신호를 감지하여 먹이가 풍부한 곳으로 이동합니다.
2. 주요 이동 목적
지렁이는 목적지나 경로를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환경 자극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 먹이 찾기: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유기물이 풍부한 토양을 향해 이동하며 섭취합니다.
- 번식 (짝짓기): 비가 오는 등 흙 밖 환경이 습할 때는 천적의 활동이 뜸하고 몸이 마르지 않아 안전하므로, 짝짓기를 위해 땅 위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호흡: 폭우로 땅속에 물이 가득 차 산소가 부족해지면, 숨쉬기 위해 일시적으로 지상으로 이동합니다.
결론적으로, 지렁이의 움직임은 미시적인 환경 변화(빛, 습도, 화학 신호)에 따른 즉각적인 반응이며, 이 반응들이 모여 생존과 종족 보존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출처: 일반 생물학 및 동물행동학 관련 과학 교육 자료 및 백과사전 내용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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