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S NOTE | 17
어긋남의 미학, 그리고 공명
2023 노트에서 발췌
우리의 의지가 향하는 곳과 실제 삶이 흐르는 방향은 종종 미묘하게 엇갈린다. 손을 뻗어 결과를 기대했던 지점에서는 아무것도 맺히지 않고, 결실은 예상치 못한 어둠 속에서 조용히 익어가곤 한다. 이러한 불일치(Discrepancy)는 단순한 실패라기보다는, 우리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영역이 언제나 존재한다는 방증일 것이다.
한때는 열망이 곧 순수함이라 믿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반드시 이루겠다는 의지가 강해질수록 시야는 좁아졌고, 순수는 너무나 쉽게 욕망으로, 욕망은 다시 집착(Obsession)으로 변질되어 행위자를 목적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버린다. 행위가 결과라는 무게에 눌려 질식할 때, 주체(Subject)는 스스로를 잃게 된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도달한 결론은 명확하다. 중요한 것은 행위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행위(Act)에 자아를 결박하지 않는 것이다. 결과를 갈구하지 않으면서도 대지에 깊게 뿌리를 내리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존재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조용한 위엄이다. 집착을 소거하고 움직일 때 비로소 행위는 목적의 도구가 아닌 그 자체로서의 생명력을 획득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감사(Gratitude)’라는 개념 또한 재정의되어야 한다. 감사는 억지로 긍정을 가장해 만들어내는 감정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도리어 무언가가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나의 한계를 인정함으로써 비로소 시작되는 이해의 방식이다. 내 계획대로 흐르지 않는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내가 이 거대한 세계에서 고립된 단독자(Solitary Being)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질서 속에 포함되어 함께 호흡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그 인정은 패배가 아닌 존재의 확장이다.
목적만 좇느라 좁아졌던 시야가 트이고,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마주하게 될 때, 나의 속도와는 다르게 흐르던 세계의 고유한 리듬이 내 안에서 감각되기 시작한다. 이때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어떤 성취의 기쁨이 아니다. 그저 나의 내부에서 맴돌던 시간과 외부에서 흐르던 시간이 만나 비로소 하나의 화음을 이루는 순간일 뿐이다. 어긋남이 아니었다면 결코 듣지 못했을 그 미세한 떨림이 나를 통과해 지나가고, 불완전한 나는 세계라는 거대한 질서 속에 온전히 놓이게 된다.
목적만 좇느라 좁아졌던 시야가 트이고,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마주하게 될 때, 나의 속도와는 다르게 흐르던 세계의 고유한 리듬이 내 안에서 감각되기 시작한다. 이때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어떤 성취의 기쁨이 아니다. 그저 나의 내부에서 맴돌던 시간과 외부에서 흐르던 시간이 만나 비로소 하나의 화음을 이루는 순간일 뿐이다. 어긋남이 아니었다면 결코 듣지 못했을 그 미세한 떨림이 나를 통과해 지나가고, 불완전한 나는 세계라는 거대한 질서 속에 온전히 놓이게 된다.
예술은 바로 그 떨림이 주체를 투과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범위와 그럴 수 없는 범위, 나의 유한한 의지와 세계의 무한한 흐름. 그 두 가지의 숨결이 정교하게 맞춰질 때 삶과 예술은 비로소 평온(Tranquility)이라는 하나의 흐름(Flow) 속에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