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궤적: 인과율을 넘어서 - kim heejo

ARTIST’S NOTE | 16

존재의 궤적: 인과율을 넘어서

2013-2025

 
1.
인과율이란 과연 ‘원인에서 결과로’ 향하는 단순한 흐름일까? 아니면 그보다 훨씬 더 근원적인, 존재의 구조일까?
 
나는 오랫동안 그것을 세계의 질서를 지탱하는 원리로만 이해해왔다.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모든 결과는 그 이유의 필연적 산물이라는 믿음. 그 견고한 법칙 속에서 세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질서가 더 이상 나를 설명해주지 못한다고 느꼈다. 이유가 분명한데 마음은 따라가지 않고, 결과가 명확한데 세계는 어딘가 틀어져 있었다. 그 균열 속에서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필연의 사슬은 단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도식이 아니라, 어쩌면 존재가 자신을 성립시키는 방식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2.
가만히 돌이켜보면, 우리는 언제나 결과 속에서 자신을 인식한다. 이미 일어난 사건, 지나간 감정, 남겨진 흔적들. 그제야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유를 추적하며 자신이 세계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자각한다. 그때 의식은 단순히 결과를 받아들이는 수동적 장치가 아니다. 의식은 이미 일어난 결과들을 하나의 질서로 다시 묶어내며, 그 질서 속에서 새로운 ‘원인’을 구성해내는 구조적 장치다. 즉, 원인은 처음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재구성 속에서 새롭게 탄생한다. 이제 나는 이 법칙을 단순한 사고의 틀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질서를 세우는 동시에, 그 질서를 흔드는 힘이다. ‘왜’라는 질문은 인간이 자신을 인식하기 위한 최소 단위이며, 그 물음을 반복하는 행위 자체가 곧 사유의 작동이다. 그러나 사유는 결코 완결되지 않는다. 모든 원인을 낱낱이 파악할 수 없기에, 이 체계는 언제나 불완전하게 남는다. 바로 그 불완전함이 사유를 멈추지 않게 하는 역설적 원동력이다.

3.
또한 나는 이 흐름이 결코 선형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점점 더 분명히 느낀다. 하나의 원인이 결과로 이어지고, 그 결과가 다시 새로운 씨앗이 되어 세계는 되먹임의 리듬 속에서 진동한다. 이것은 건조한 논리의 체계라기보다 관계와 상호작용의 지속, 의미와 형태가 서로를 반사하며 끊임없이 갱신하는 유기적 구조다. 그 흐름 안에서 나는 직감했다. 세계는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나는 세계를 해석하는 존재가 아니라,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다시 생성되는 존재라는 것. 그렇게 보면, 그동안 믿어왔던 원인과 결과의 엄격한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모든 것은 서로의 시작이자 끝으로 작동한다. 이 상호 의존의 총체 속에서 인과는 더 이상 고정된 법칙이 아니라, 존재가 자신을 유지하고 변형시키는 근본적 방식이 된다.

4.
나는 그 구조 속에서 살아간다. 새로운 원인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대신, 이미 주어진 결과들 속에서 ‘의미의 재원인화(Re-causation)’를 시도한다.하나의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의 조건이 되고, 감정의 잔여가 다음 움직임의 기점이 된다. 그 순환은 결코 닫히지 않는다. 삶은 단순한 인과율의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자기 자신을 원인으로 삼아 끝없이 흐르는 과정, 그 자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스스로에게 묻는다. 원인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혹은 존재는 언제부터 결과였는가? 그 질문의 경계에서 모든 것은 다시 원점이 된다. 나는 그 열린 틈에 서서 내 생각과 행동을 다시 원인으로 되돌려놓는다. 그렇게 나는, 영원히 다시 시작되는 질문이 된다.